2005년 4월 17일

주일 예배를 마친 후, 집으로 돌아온 우리 가족은 서둘러서 이태리로 여행 떠날 준비를 마쳤다.
하루 전에 미리 싸둔 여행가방이 우리들의 발걸음을 재촉했으며,
마지막 점검을 마친 우리는 들뜬 마음으로 여행길에 나섰다.
일단 집 근처에 있는 주유소에 가서 차에 기름을 가득 채웠다.

킬에서 밀라노까지는 편도 거리가 1200킬로미터가 넘는다.
이제 긴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우리는 일단 가능한 한 쉬는 시간을 줄이고 멀리 가고자 했다.
하지만 차는 얼마 못가서 휴게소로 들어갔다.
샤론이가 쉬 마렵다고 했기 때문이다. ^^
태어나서 처음으로 장거리 여행을 하는 샤론이가 한 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하였지만,
우리는 다 잘 될 것이라고 믿고 여행길에 나섰다.

이번 여행을 위하여 극장 동료인 세르게이(Sergej)에게 나비게이션 시스템(포켓PC)을 빌렸다.
독일에서 스위스를 거쳐 이태리로 들어가는 국경에서 헤매는 일을 줄이기 위함이었고,
또한 적당한 구간에서 유스호스텔을 찾아가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갈림길에서 나비게이션이 우리가 예상하던 경로로 가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한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말이 문득 생각났다.
우리는 일단 나비게이션이 가라는 경로로 갈림길을 접어 들었다.
계속 가면서도 아무래도 이렇게 가면 좀 더 멀리 돌아가는 길이 아닐까 생각되어 그 다음에 나오는 휴게소로 들어갔다.
마침 배도 출출하고 해서 간단하게 컵라면이라도 먹으면서 경로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컵라면을 맛있게 먹은 후,
나비게이션으로 경로를 이렇게 저렇게 알아보던 중, 나비게이션이 갑자기 먹통이 되어버렸다.
'이런, 이게 작동 안 되면 오늘 밤 유스호스텔 찾아가기도 힘든데...'
아무리해도 더 이상 작동이 안 되었다.
아내에게 상황을 설명하고는 일단 계속해서 이태리를 향해서 내려갔다.

물론 그 날 밤 잠은 차에서 잘 수 밖에 없었다.
잠을 자는 둥 마는 둥하며 몇 시간 눈을 붙인 후,
잠이 깨면 조금씩 운전을 해서 남쪽으로 계속 내려갔다.
아직 이른 봄이라서 밤에는 추웠기에 차속의 온도를 올리기 위해서라도
차를 달려서 따뜻한 공기를 배급해야만 했다고 변명해 본다.

한밤중에 독일-스위스 국경에서 우리는 스위스 고속도로를 사용하기 위한 통행증을 구입했다.
스위스의 고속도로는 일년에 한번 통행증을 구입하여 그해 연말까지 사용한다.
요금으로 30 유로를 주니 5 스위스프랑을 남겨주었다.

우리는 국경에서 약간 더 남쪽으로 내려가서는 날이 밝아 올 때까지 잠을 잤다.
스위스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며 내려가기 위함이었다.

아침 햇살에 빛나는 스위스의 경치는 참으로 아름다왔다.
독일에서부터 약간 흐리던 날씨는 어느듯 맑게 개였으며,
알프스 산에는 하얗게 덮인 눈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맘껏 자랑하고 있었다.

우리는 잠시 루가노 시내에 들어가서 드라이브 하면서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한 후,
이태리 국경을 향하여 계속해서 내려갔다.

국도로 이태리 국경을 통과한 우리는 갑자기 무단횡단하는 사람들과 난폭하게 운전하는 차를 보고 잠시 당황하기까지 했다.
'예전에 이곳에 살 때에는 몰랐는데...'



4월 18일 낮에 밀라노에 도착한 우리는 간단하게 이곳 저곳 둘러보았다.
예전에 우리가 살았던 Via Marco Aurelio 거리도 찾아가 보았다.
우리가 살던 때와는 조금 변한 모습이었지만, 왠지 정감이 느껴지는 것은 우리의 추억이 담겨 있는 곳이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오후에는 바(Bar)에 앉아서 차를 마셨다.
다른 테이블에서 대화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태리 말의 기억을 조금씩 꺼집에 내었다.

람브라테 역 근처에 살고 계시는 은정 형수님과 딸 그레이스를 만난 우리는 반갑게 인사한 후, 이런 저런 예기를 나누었다.
나는 피곤한 몸을 오랫동안 가누지 못하고 곧 꿈나라로 갔으나,
아내는 형수님과 함께 이야기 꽃을 오랫동안 피웠다.

다음날 아침, 아내의 파르마 국립음악원에 전화를 해서 아내의 디플로마를 찾을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이미 준비가 다 되어서 바로 찾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우리는 차를 타고 파르마로 내려갔다.

가는 도중 고속도로 공사구간에 시속 60km로 제한한다는 표지판을 보고도 유유히 시속 120km로 달리는 차들을 보며,
'역시 이태리구나'라고 다시 한번 느꼈다.

오랫만에 파르마 국립음악원에 들어간 우리는 예전에 비해서 변함이 없는 그 건물들과 주위 환경을 보며, 일종의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드디어 아내의 디플로마를 받을 수 있었으며,
우리는 그 후, 음악원 앞에 있는 Bar에 가서, 예전에 학교 다닐 때처럼, 오렌지 쥬스와 빵을 사 먹었다.
역시 이태리 빵은 맛있었다. ^^



4월 19일에는 아내의 대학 선배인 현숙씨를 만나러 두오모 광장으로 나갔다.
두오모 성당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샤론이에게 보여주고 싶었으나,
두오모 성당은 전면 공사중이어서 그리 아름답게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중국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였다.

4월 20일 아내의 친구 종은씨를 만나서 중국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였다.



그 후, 그날 오후에는 오텔로 선생님을 찾아 뵈었다.



선생님께서는 얼마전 다리 수술을 하셔서 요즘 휠체어 신세를 지고 계셨다.
하지만 건강해 보이셨기에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었다.
선생님의 아내인 실바나 자놀리(Silvana Zanolli)는 아버님과 생녀월일이 같아서 더 친근감이 간다.
마리아 칼라스와 많은 공연을 함께 한 실바나 또한 건강해 보였다.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집을 나서려는 순간 오텔로 선생님께서는 나를 앉고 울먹이시면서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그 후, 우리는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세네지 선생님을 찾아가 뵈었다.
선생님께서는 바쁜 가운데도 다른 사람의 렛슨을 뒤로 연기하시면서 우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또한 나의 노래를 들으신 후 칭찬과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선생님께서도 헤어지기에 앞서 눈물을 글썽거리시며 또 보자고 하셨다.
요즘 지팡이를 짚고 다니신다는 선생님의 모습이 눈에 자꾸 아른거린다.

이날 저녁식사는 은정형수님과 그레이스와 함께 중국식당에서 해결했다.



4월 21일에는 은재를 만나러 로마로 갔다.
오후 6시가 좀 넘어서 로마 테르미니 역(기차역)으로 나온 은재와 함께
작곡과 선배였던 김지운 선배님 댁에 가서 이야기도 나누고 식사도 같이 하였다.
그 후, 은재집에 와서 그동안 작동하지 않았던 나비게이션 시스템(포켓PC)의 프로그램을 다시 설치하였으며,
은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4월 22일
새벽 5시 5분 기차를 타기 위하여 은재집에서 대강 3시 반이 좀 넘어서 기차역으로 출발하였다.
평소에는 차가 엄청 많이 막히는 도로이지만, 그 시각에는 텅텅 비어있어서
생각보다 너무 빨리 역에 도착한 우리는 역에 들어가서 밀라노로 가는 기차표를 사고 싶었으나,
역 입구에는 쇠창살 문으로 닫혀 있어서 들어갈 수 없었다.
아마도 노숙자들 때문에 기차가 안 다니는 시간에는 문을 닫아 놓은 듯 했다.
새벽 4시 반이 넘자 그 쇠창살 문이 열렸으며, 나는 자동티켓발급기에서 기차표를 샀다.
은재와 비록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해서 아쉽지만, 훗날을 기약하며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밀라노에 아침 10사가 조금 넘어서 도착하였으나,
그날 버스, 지하철, 트람의 파업이 오전 9시경부터 4시간동안 진행되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고 우리가 묶고 있던 람브라테 역으로 향했다.

독일땅 킬로 출발하기에 앞서 그동안 우리에게 잠자리와 먹을 것 등으로 배려해 주셨던 형수님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하였다.

드디어 독일을 향하여 출발하기에 앞서 주유소에 가서 기름을 채웠다.

밀라노의 순환도로를 통하여 가려는데, 갑자기 차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며 느낌이 좋지 않았다.
차를 길 가에 세우고 바퀴를 보니, 왼쪽 뒷바퀴가 터져있었다.

나는 보조바퀴를 빼어내어 터진 바퀴를 빼어내고 장착한 후, 자동차 수리하는 곳으로 갔다.
그곳에서 터진 바퀴를 보더니 교체해야 한다고 하였다.
얼마하냐고 물으니 자기들이 가진 중고 타이어로 갈면 30유로 한다고 하였다.
그리 비싼 가격도 아니고 해서 그렇게 타이어를 갈고 나왔다.

그 후, 꼬모 호수 근처에 있는 상설할인매장을 찾아간 우리는 그곳에서 구경만 하고는 고속도로로 갔다.
고속도로 통행료를 내려고 지갑을 찾으니 내 지갑이 안 보였다.
'이런... 어디에서 없어졌을까...'

일단 우리는 상설할인매장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곳은 영업시간이 끝나서 문을 닫는 중이었으며, 내가 들어가려고 하자 못 들어오게 하였다.
사정을 설명하고는 내가 둘러보았던 곳으로 가서 찾아보았으나,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밀라노 자동차 수리소로 돌아가 볼까 생각도 해보았으나,
마음 먹고 훔쳐갔다면 다시 돌려줄 리가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는 독일을 향하여 출발했다.

이런 저런 일로 예상보다 늦게 출발하게 된 셈이어서 우리가 예상했던 구간까지 그날 밤에 못 갔으며,
역시 이날도 차에서 잠을 잤다. (아내와 샤론이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조금이라도 지갑을 잃어버린 일과 유스호스텔에서 잠을 못 잔 것을 만회하기 위하여 나는 하이델베르크 시내로 들어가서 잠시 구경하자고 하였으며,
아내도 나의 미안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들어주기 위하여 동의했다.

우리는 하이델베르크에 있는 성에 올라가서 하이델베르크 전경을 내려다보며 성 구경도 하였다.



그 후, 다시 킬을 향하여 출발하여 신나게 킬을 향해서 올라왔다.
하노버 근처를 통과할 무렵 고속도로의 한 구간이 공사때문에 완전히 차단되어서 국도를 통하여 그 구간을 통과하게 되었다.
차는 거북이 걸음을 하였으며, 그 구간을 힘겹게 통과한 후에는 그다지 정체현상을 경험하지 못했다.
함부르크에서 킬까지의 구간은 아내가 운전함으로 나의 피곤함을 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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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사야 4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