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잔치


사람은 자신 혼자만 있다면, 수줍음이란 형용사를 잊어버렸을 것이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나를 포옹하고 있고 서 있기에 저 고약한 수줍음이라는 말이 탄생했다. 검은 빛깔의 눈망울들이 내 눈 안으로 쏟아져 들어와서 은근하게 내 입술을 지켜보고 있을 때 어디서 군불지피는 사람도 없는데 내가 서 있는 공간의 온도는 지칠 줄 모르고 올라간다. 떨리는 입술로 한마디 두마디 말을 내뱉고 긴장이 서서히 녹고서야 이제 일상적인 맥박을 유지한다. 그러고 마칠 때 쯤이면 다시한번 이러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하다. 수줍음 아니면 기쁨... 항상 두 가지 것으로 내 말을 재판당했다. 이것은 머리도 웬만큼 자라고, 생각도 자라서 처음 당신에게 진 빚을 갚을 때 첫 모습이었다.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는 언어의 산물이었지만......

시간은 멈추는 법이 없다.

한 바탕 빚 잔치를 벌리고 야단을 떨고 나면 침묵 속에 영상이 내 머릿속에 찾아든다. 빚쟁이들이 들이닥쳐 집어간 물건 한점, 한점들은 대부분은 오랫도록 간직하며 애지중지 하던 고풍스러운 가구들, 예쁘고 가지런히 정리한 옷들, 솜을 넣어 뽀송뽀송 잘 누벼놓은 이불, 몇 푼안되 보이는 식기들이다. 그네들은 알가 모르겠다. 단지 내가 궁색해서 그나마 한 짐 청산해서 밥벌이하고 살아가는 것으로 여기지는 않는지....., 저런 물건 있어봐야 별로 덕은 되지 않지만 아쉬운 참에 그냥 주어가지는 않는지...., 그래도 다행이다. 그네들에게 진 나의 부채를 갚는 일에 그네들이 보기에 별 필요없는 물건이라고 내 팽개치지는 않으니.. 그네들도 나와 동류의 인종인지라..... 지금은 내 것을 가지고 가는 사람들이지만, 인정있는 이웃이다.
이레 만에 찾아드는 빚잔치 그네들 보기에 가난한 집 물건인지라 볼품없고, 구식이지만 오늘도 제법 씻어도 보고 닦아도 보고 한다. 잘꾸며진 비단이나 값비싼 가죽으로 만든 제품들로 갚지 못해 부끄럽고 미안하지만, 궁색한 이의 행복은 있다. 그나마 내가 가지고 가라고 우리집 앞마당에 내다 놓은 나의 고풍스로운 물건이 없다면, 그네들의 기억과 추억은 그리고 눈물과 웃음은 그저 흘러가는 세월 속에 바람드는 창가에 타고 남은 모기향처럼 어디론지 날아가버릴 것이다. 내 물건을 보고 그네들은 오늘을 볼 수는 있지 않는가? 이렇게 없는 살림에 한 마디로 넋두리 쳐본다.

“망각은 우리로 하여금 다시 포로가 되게 하고 기억은 우리로 자유민이 되게 할 것이다”
-예루살렘 “야드봐셈” 기념관 출구 동상.
“욤”의 받침대 글귀에서

시간은 멈추는 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