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9장 – 소돔, 거울 속의 나 (창 19:1-37)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다"(13:13). 그러나 사람들이 보기에 소돔은 에덴동산 같았다(13:10). 조건은 최고였다. 그러나 그 외적 조건이 교만과 죄악, 그리고 부르짖음을 낳았을 뿐, 의와 정의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


아브라함과 헤어져 떠나온 지 벌써 20년이다. 롯은 지금 20여 년째 소돔에서 살고 있다. 어찌 된 일인지 지난 20년의 세월 롯은 소돔에서 성공한다. 아브라함의 승리가 중요한 근거가 되었을까? 롯은 지금 소돔의 성문에 앉아 있다. 성문에 앉아 있다는 것은 그가 재판하는 장로의 자리에 있다는 것이다. 실질직인 영향력은 없는 명목상의 장로였는지도 모르겠으나 롯은 소위 말해서 성공했다.


그런데 어느 날 범상치 않아 보이는 자 둘이 성에 들어오는 것이 보인다. 어쩌면 롯은 이전에 이와 비슷해 보이는 하나님의 사자들을 만났던 적이 있었을 수도 있다. 롯은 서둘러 내려가 그들을 맞는다. 그래야만 하는 것이 지금 소돔의 상황이다. 그들을 맞아 들이는 것으로 롯은 위기를 맞는다. 그러나 이 위기는 롯의 인생을 뒤바꿀 수도 있는 일생 일대의 기회이기도 하다.


아니나 다를까 소돔 사람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롯의 집을 에워싸고 롯의 집에 들어온 자들을 내어 달라고 한다. 롯은 자기 딸들을 내어 줄 테니 손님들을 상하게 하지 말라고 하나, 그들은 듣지 않는다. 당시에 딸이 재산에 불과했다 할지라도 인지상정이란 것이 어디 시대가 다르다고 변할 수 있겠는가? 롯은 지금 하나님에게서 온 사람들을 보호하고자 자기 딸을 내어 주겠단다. 이것은 희생이나 자기 포기가 아니다. 모든 것이 뒤틀어져있다.


사실 롯은 진작 소돔을 떠나야 했었다. 그러나 롯은 지난 20년 그곳을 떠나지 못해왔다. 이제 소돔의 멸망이 다가왔음에도 롯은 주저한다. 롯은 여전히 소알을 선택한다. 지난 20년, 아브라함의 하나님에 대한 막연한 기억을 가지고 있으면서 소돔에서 살아오는 동안 삶의 모든 것이 뒤섞인 채 혼란스럽게 되어버렸다.


롯 자신은 부인할지 몰라도, 롯의 주저함 속에는 소돔 사람들의 모습이 녹아 있다. 천사들이 롯을 문 안에 들여 놓은 후 밖에 있는 자들의 눈을 어둡게 한다. 엄청난 일이 그들에게 벌어진 것이다. 공포와 두려움 속에 행동을 멈추고 이것이 지금 무슨 상황인가 생각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들은 눈이 멀고도 여전히 롯의 집 문을 찾는다. 마치 그들에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이...... 맞다. 이들은 이미 눈이 멀어 있었다. 인생과 삶을 보는 눈이 멀어 있었다. 그런데 롯 또한 그들과 그리 멀리 있지 않다.


미련을 가지고 소돔을 향해 돌이키는 대신,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한다.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에로 돌이켜야 한다. 악한 죄 파도가 많아도 나의 맘은 평안하다며 하루 하루 마음의 평강만을 쫓아 온 결과는 사망 직전의 상황에서의 탈출이었다.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내가 걸어가는 길을 지켜주고 보호해 주는 수호신을 마음에 모시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마음의 평화를 구하는 것이 신앙이 아니다.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내가 걸어가던 길을 멈추고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길을 따라 걸어가는 것이다. 본토 친척 아비 집에서 좀더 여유있고 영향력 있는 삶을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여 떠나가는 것이다.


시력을 잃었음에도 아무런 변화를 알아채지 못하고, 욕망이 이끄는 대로 삶을 소진하고 있는 소돔 사람들이나, 심판과 멸망이 코앞에 이르렀음에도 찾아오신 하나님을 따라 길을 나서는 대신, 순간을 모면하고 다시 옛 삶의 자리로 돌아가려는 롯이나...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아니라 할 수 있는지...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고는 돌아서서 잊고 마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기를.... 주여,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