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7침 삼킬 동안도 (7:1-21)

 

삶이 쉽지 않다는 것, 인생에게 힘든 노동이 있다는 것을 욥도 안다(1). ‘인간은 고생을 위해 태어났다(5:7) 누군가가 말할 만큼 고달픈 매일이 있음을 그도 안다(3). 그러나 종의 힘든 하루에도 쉼을 주는 저녁 그늘이 있고, 품꾼의 고된 노동 뒤에는 고달픔을 잊게 하는 품삯이 있다(3). 그러나 욥은 벌써 여러 달째 고통이 그칠 날이 없다(3). 낮에는 밤을 기다리고, 밤에는 아침을 기다리나 밤낮이고 쉼이 없고(4), 잠든 동안이라도 고통에서 놓이기를 바라나 뒤숭숭한 꿈자리에 눈 감기가 두렵다(13). 사람이 바다 괴물이 아닌 이상 어찌 이를 견뎌내겠는가?(12)

 

희망 없는 오늘, 쉼 없는 노동, 보상 없는 수고, 위로 없는 고통.... 인간은 정말 고생을 위해 태어났단 말인가? 출구 없는 욥의 하소연은 그러나 어느새 기도가 된다(7). ‘한낱 바람 같은 생명의 날, 다시 행복을 보지 못하고 생을 마친다면(7), 차라리 지금 죽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15)? 헛것뿐인 나의 날들을 어찌 붙잡고 계십니까(16)?‘

 

자신의 고통 속에서 매 순간 하나님을 마주하던 욥은 만일 그의 날들이 하나님께 아무 것도 아니라면 하나님은 어찌하여 그를 과녁 삼아 놓아주지 않는지(20), 만일 그의 날들이 하나님께 아무 것도 아니라면 하나님은 어찌하여 그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시지 않는지 묻게 된다(21).

 

혹시 그가 범죄했던들 그것이 전능자에게 무슨 해가 되겠는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주께서 죄와 허물을 사하지 않는 것은 사람을 하찮게 여겨서가 아니라, 사람의 평생을 그가 짐지고 있기 때문이다(20). 고통의 신음 속에서 욥은 하나님 부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손가락이 그를 누르고 있음을 느낀다(cf.32:4).

 

사람이 하나님께 아무 것도 아니기에 고통 속에 던져놓고 모른 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고통을 모른 채 하기는커녕, 사람에게서 눈을 돌리지 않고 침 삼킬 동안도 그를 외면하지 않고 계심을 고통 중의 욥이 느낀다(19). 그래서 묻는다. 어찌하여 나를 과녁 삼고, 나로 인하여 무거운 짐을 지십니까? 어찌하여 내게서 눈을 돌이키지 않으십니까? 어찌하여 나를 놓아두지 않고 나의 날들을 붙잡고 계십니까? 어찌하여 나를 크게 여겨 나를 단련하시고 권징하십니까?

                                                              

앞뒤좌우 어느 곳에서도 분명한 답을 들을 수 없어 탄식하지만(23:8,9), 그러나 하나님이 그의 걸음을 붙잡고 있고, 그의 날들을 외면하지 않고 있으며, 침 삼킬 동안도 그를 놓지 않고 있음을, 고통의 신음 속에서 욥이 확인한다(23:10). 나의 오늘도 그와 같음을 기억한다.